78일째 (7월 3일) 또 하나의 트러블을 넘기며
라파스-코파카파나- 푸노-쿠스코 까지 숨 가빴던 하루

한 치만 착오가 생겨도 전체 일정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타이트하고 치밀하다.
유럽에서 남미 일정의 상당 부분을 소모해 버리고 얼마 되지 않는 날짜에 내 나름대로 욕심과 완벽주의가 발동되니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하고, 더군다나 이스터 섬에선 계획 보다 이틀을 더 있게 하나님이 안배를 해 주시니 마음은 바쁘고, 이래저래 비행 전일정표는 계속 조정, 연기 등으로 별로 깨끗하지 않다.
어떤 뉴질랜드 청년이 농담조로 "Are you craze?"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행의 상식을 조금 벗어난 강행군은 계속되고 또 그리 계획되다.
아침 아니 새벽, 추위와 한기 때문에 여러 번 깨기를 반복하다.
코가 맹맹해서 입으로 숨을 쉬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고산지방이라 부족한 산소로 지끈거리며, 머리가 아프고, 몸도 무겁다. 어쨌든 7시 정도, 버스가 픽업하러 오기로 되어있고 그 안에 짐을 꾸리고 이것저것 준비해야 한다.
물을 틀어보니 뜨거운 물은 아예 나오지 않고 입에는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이대로 condition을 유지하면 여행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 추운 가운데 침대에 올라 선 체조에 집중하다.
7시 10분.
호텔 프론트에 내려가 기다리니 버스는 오지 않고 어떤 버스로 어떻게 픽업이 이루어지는지 감이 잡히지 않고 호텔 직원과도 정확하게 의사소통되지 않아 내심 불안해하고 있는데 7시 40분 정도 버스 여행사 직원이 나를 부르러 오고 그를 따라가서 코파카파나 가는 허름한 버스에 탑승하고, 이런 식으로 직원이 호텔 이름과 승객이름이 쓰여 진 명단을 들고 시내 곳곳 호텔을 40여분 정도 돌아다니다 대충 버스가 채워지자 목적지로 출발하다.
3시간 여정. 중간 휴게실에서 초코파이, 간식을 사서 버스 안에서 먹다.
버스 안에는 유럽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 젊은 남녀, 여행객들로 꽉 차 있고 아시아인은 나 혼자인 듯하다.
코파카파나 근교에서 배로 일단 건너편까지 건너고, 다시 그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더 가니 도대체 바다인지 호수인지 구별이 안가는 거대한 고원의 호수 티티카카 호가 눈앞에 펼쳐져있고, 버스는 호반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고원을 오르막 내리막 하면서 돌고 돌아 11시 30분 정도 코파카파나에 도착하니, 원래 예정대로 여자직원이 환송 나온다.
그녀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가 있는데 그녀,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약간 분위기가 뒤숭숭해 있어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는데, 이런 날 벼락이, 푸노로 가는 중간 마을에서 폭동이 일어나 길이 전면 봉쇄, 오늘 내일 푸노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밖에 나와 보니 다른 여행자들과 관광객들도 삼삼오오 모여 향후 일정을 어떻게 짜나 웅성거리고 있고 여기가 볼리비아와 페루가 인접해 있는 국경근처라 많은 사람들이 페루 쪽으로 버스를 이용해 넘어가려고 여행사들과 상점들안엔 사람들로 꽤 분주하고 소란스럽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쨌든 이 어처구니없는 황당한(그러나 남미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상황에 내심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으나 잘 통하지 않는 언어로 꼭 오늘 푸노로 가야 된다는 나의 의지를 강력히 천명하고(걸어서라도 간다) 나의 거센 요구에 이리저리 알아보더니 만약 꼭 푸노로 가기를 원하면 폭동이 일어난 지점 못 미쳐서는 미니버스로 가고, 거기서부터 최소한 3시간 정도는 걸어서 분쟁지역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구나, 내심 안도하며 어차피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고 미니버스도 마치 전쟁터에 피난민들이 서로 열차를 올라타듯 경쟁하여 겨우 타고 불편하게 1시간 30분쯤 달려 국경지대에서 볼리비아 출국수속하고, 좀 더 가서 페루 입국수속 밟고, 또다시 이번엔 운전자석 앞자리 가운데에 오징어처럼 끼어 한 시간 정도 더 가니 드디어 폭동지역이 나오고, 도로는 바위나 돌덩어리로 바리게이트를 쳐놔 정상적인 버스운행이 불가능한 상태로 도로가 마을 사람에게 점거가 되다시피 하고, 일단 미니버스에서 내려 짐을 앞뒤로 짊어지고 황폐화된 도로를 따라 버스에서 내린 다른 일행들과 함께 계속 걷다가 운행이 가능한 곳은 마을 소형버스를 얻어 타기도하고, 걷기를 2시간 넘게 하다.
분쟁 지역을 대충 통과하여 거기서부턴 푸노로 가는 시금털털한 완행버스를 타고 1시간 쯤 가니 거의 5시가 다되어 푸노에 도착하다.
내친 김에 쿠스코 까지 가기로 작정하고 거기에 있는 유일한 동양인이어서 그런지 거기까지 동행한 미니버스 직원들이 나를 알아보고 특히 나를 챙겨 주는 것이 고맙고, 버스터미널로 가서 푸노행을 알아보니 원래는 9시 30분 심야버스인데 5시 30분으로 출발이 당겨졌다 한다.
푸노에 온 목적이 티티카카 호를 보는 것인데 그거야 버스타고 오면서 또 코파카파나에서 충분히 경험했고 푸노에서 몇 가지 볼게 있었으나 여건상 바로 쿠스코로 출발하기로 작정.
버스티켓을 끊고 터미널 여행사와 조우해 도착즉시 숙소와 그날 새벽 마츄피츄 기차투어가 가능하나고 물어서 비스타돔 투어 165달러에 일사천리로 계약해서 우선 40달러 계약금으로 주고 나머지는 가서 신용카드로 끊기로 결정하다.
전날 골머리를 썩였던 문제를 현지에서 너무 손쉽게 해결하니 기분이 좋아지고 일이 잘 풀려간다는 느낌이 들다.
버스는 6시정도, 버스를 꽉 채울 때 까지 기다린 후 출발하다.
8000원 쿠스코 행 완행버스는 8시간 가까이를 달려 1시 40분, 새벽이 되어 쿠스코에 도착하다.
버스 안에서 고도에 따른 두통과 피로, 추위와 싸워 가며(워낙 고도가 높다보니 야간에 몹시 추움. 미리 알고 담요 추리닝 준비) 잤다 깼다 반복하고, 내 옆자리의 장교는 그 와중에도 꼿꼿하게 절도 있는 군인자세를 유지하고, 그런 대로 내릴 때는 생각보다 상쾌한 몸 상태로 내리다.
나를 마중 나온 호텔 아줌마와 같이 숙소에 도착해 마츄피츄 새벽 일정에 대해 말하고 신용카드는 8% 수수료를 달라고 해 여행자 수표로 200달러 계산하고 잔돈 35달러는 아침에 받기로 하다.
5시에 모닝콜 부탁하고(5시 30분 출발) 내방에 올라오니 2시 30분.
빨래(팬티, 양말, 바지)하고 어쩌고 하니 두 시간이 못 남고 마지막으로 선 체조 하며 몸을 RELAX 해주고 자는 듯 마는듯하니 어느새 5시 모닝콜이 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