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일째 7월 4일> 잉카의 신비 마츄픽츄에 오르다.

아침 5시 모닝콜이 울리다.
부랴부랴 샤워하고(여긴 전번호텔에 비해 덜 춥고 뜨거운 물이 나옴), 바쁜 시간 가운데 10분정도 선체조하고 5시 30분 좀 넘어 로비로 내려가니 벌써 가이드가 나를 픽업하러 와있고, 택시를 타고 1O여분쯤 가서 기차역에 도착해, 기차 왕복권, 입장권 한 묶음 철해 나에게 주고 그 친구는 가버리고 나는 기차에 오르다.
기차는 6시에 출발하고 목적지까지는 4시간 좀 못 걸려 9시 30분 정도 도착예정이다.
기차는 쿠스코 시내를 관통하기 때문에 새벽 여명을 받아 약간 희미하게 드러나 보이는 잉카의 도시 쿠스코를 덤으로 관광하면서 게다가 친절하게 3번 기차를 왔다 갔다 하면서 좋은 경치가 나오는 곳은 기차속도를 최대한 줄여주기도 하고, 또 내가 하는 비스타돔은 기차가 투명 유리로 되어 마츄피츄로 가는 비경을 입체적으로 감상하기 좋게 설계되어 상당히 인기 있는 기차투어이다.
새벽에 한번 출발하는 비스타돔은 생각보다(성수기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빈자리가 많이 눈에 띄고 나는 쿠스코 새벽여명과 시내 경치를 사진에 담기 분주한가운데, 마츄피츄로 가는 기차 여정은 무척 아름답고 신선하다.
잉카의 왕족들이 자신들의 수도인 쿠스코를 떠나서 외부 침략자들이 도저히 발견하지 못할 곳으로 도망쳐 갔던 그 길이 지금 내가 가는 굽이굽이 산속으로 깊게 향해있는 이 길이 아닐까? 그때 그 도망자들의 절박하고 암담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이 마음이 찡해진다.
기차 안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간단히 먹고 10시가 다 되어 기차역(아구아스 칼리엔레스)에 도착하고 투어 가이드들이 자기 여행사에 속한 관광객들을 하나하나 챙기고 주의사항 등등을 이야기하고 그러는데 나는 아예 그들과 합류한 생각이 없어 미리 가이드를 만나 그런 의사를 밝히고 혼자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꼬부랑 오르막길을 가니, 가파른 벼랑에 천길 낭떠러지가 나오고 계속 올라가보니 거기에 공중도시, 잃어버린 도시라 불리는 마츄피츄가 드러난다.
입구에서 표를 내고 입장해 생각하니 우리나라에서 참으로 오기 힘든 곳이란 생각이 불연 듯 들고 어렵게 왔으니 증명사진이라도 하나 남기자는 얄팍한 마음이 들어 평소와 다르게 입구에서부터 서둘러 사진 부탁해 좀 어벙하고 별로 인상적이지 못한 사진을 증명으로 남기고 본격적으로 운동화 끈을 다시 매고 잉카의 신비 마츄피츄에 집중해 추적을 시작하다.
원래 여행 스타일대로 힘든데 먼저, 쉬운 곳은 나중에 간다라는 원칙대로 마츄피츄에서 2시간 30분 정도 하이킹하는 최고의 봉우리 우아이나피츄에 먼저 가려고 하다.
가는 도중 우연히 잉카의 다리 이정표가 눈에 띄어 그렇지 않아도 가볼까 한곳이라 내친 김에 간다고 천길 낭떠러지 옆에 두고 1m도 안 되는 소롯길을 아슬아슬하게 헤쳐 가며 비경 절경 눈에 흠뻑 적시고 감탄에 감탄, 속바람 토해내며 잉카의 다리라고 추정이 되는 곳에 도착하다.
다리는 사라지고 거의 절벽에 발하나 디딜만한 모서리를 이용해 길을 계속 이어지고 예전에 절벽과 절벽을 이어주었다고 추정되는 부위가 잉카의 다리로 명명 되고 있다. 잉카의 다리를 보고 마츄피츄의 중심가로 내려와 신기의 석재기술을 정밀하게 관찰하다.
돌만을 이용하여, 접착제나 다른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성벽이나 신전, 가옥 등을 건설한, 그러나 여러 번의 지진이 강타했음에도 불구하고 석축으로만 이어서 지어진 여러 건축물들이 멀쩡하게 무너지지 않고 버텨냈다는 가공할만한 잉카의 기술들을 하나씩 눈으로 확인하다.
우아이피츄 가는 길을 물어 드디어 그 들어가는 입구에서 방명록에 국적과 이름을 적고(낭떠러지에 떨어져 실제로 못 돌아온 사람을 위하여) 어느 정도 비장한 마음으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마음을 다져가며 오르는데, 오르다보니 낭떠러지 절벽에 겨우 발 하나 디딜 정도라는 위태롭고 겁나게 하는 스토리와는 달리 어른 아이들, 남녀노소, 큰 무리 없이 동네 뒷산 등산하듯이 오르고 있고, 어떤 사나이가 애기를 등에 업고 오르는 모습을 보고 마치 사지에 가듯 비장한 마음으로 시작 했던 게 우스워 공연히 실소를 흘리다. 경사가 심한 곳이 있고 계단식이어서 힘이 좀 들었지만 생각만큼 그리 험한 곳은 아니었고 그래도 정상에 오르니 아래에 펼쳐진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신비롭고 장엄하고 약간은 아찔한 흥분에 적지 않은 감동을 느끼다.
이런 마음은 정상에 힘들어 오른 모든 남녀노소가 다 같이 공유하는 감정일터, 모든 이들의 얼굴에서 성취감과 자연의 경외감이 동시에 발현되고 어느새 정상에 같이 있다는 것 하나로 서로간의 동질감에 서로에게 마음이 활짝 열려,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정상에 오른 것을 격려하고 서로 축하해주기도 하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의를 하는 듯,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 고생 끝에 정 분 난다고 어쨌든 정상 위 바위에 서로 아슬아슬하게 앉아서 정담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멀리 발아래 보이는 마츄피츄도 내려다보면서 잠시 머물다가 바위 위에서 대담하지만 약간 무모한모험 한번 하고나서(떨어지면 무조건 천길) 정상을 내려와, 망루로 연결된 아주 급경사 계단에 발끝만 디딜 정도의 폭에 협소한 계단이 촘촘히 이어지고, 약간 망설이다 다시 모험심이 발동되어 도전하기로 하고 끝없이 이어진 그 끝까지 도달하니 그 끝이 아까의 정상과 다시 연결되고 다시 그 촘촘한 계단으로 하산, 미끄러지면 크게 다친다(한번 미끄러지면 최소한 바닥까지 떨어지는데 십분 걸리고)는 생각으로 발끝에 신경을 집중해서 내려와 시계를 보니 2시가 넘어가고, 최소한 입구에서 3시 버스는 타야 3시 반에 떠나는 기차에 늦지 않는다 생각하니 마음이 갑자기 급해지고, 다시 심호흡에 마음을 되잡고 약간 빠른 걸음으로 서둘지 않고 내려오니 입구까지 시간이 그런대로 남아 남은시간동안 마츄피츄에서 아까 보지 못한 곳을 위주로 한군데씩 답사하고 3시에 맞추어 버스를 타고 내려오니 그런대로 모든 것이 잘 맞아 떨어지다.
기차에 오르니 이번은 비스타돔의 첫 번째 차량. 천장뿐만 아니라 전면까지 유리로 되어 바깥경치보기가 훨씬 용이하고, 기차는 출발하고 나는 느긋하게 편안히 혼자앉아 명상하듯 또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다.
자기 색깔을 갖는 다는 것에 대한 생각하다.
홍어는 그 고유한맛 때문에 90% 사람이 이해를 못하고 싫어하기까지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혐오하는 그 맛 때문에 자신을 이해하는 소수에 의해 자신을 뭇 고기 중에 가장 비싼 값에 팔리게 한다.
자기다움. 고유의 성질. 어떤 경우에도 흉내 내거나 모방하지 않고 더욱더 자기다움과 고유의 성질을 고집한다.
불순물을 제거해 주는 것, 정화, 고유의 성질을 끄집어내고 발전시키는 것, 자기다운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소금은 소금이다.
설탕이 아무리 좋아 보이고, 달콤함이 부러워 보여도 소금이 설탕을 모방하면 소금은 그 순간 죽는다.
소금은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고, 소금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은 자기 안에 불순물을 정화하고 더욱더 소금답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비스타돔 너머로 보이는 만년설을 가득 머리에 이고 있는 안데스 고봉들을 감상하며 또 기차 안에서 여러 가지 쇼를 감상하니(수피댄스와 패션쇼)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차창 밖으로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7시 30분 기차역에 도착하다.
환송하러 나온 사람이 보이지 않아 순간 당황했으나 곧 호텔에서 사람이 나와 택시 잡아타고 숙소에 도착해 프론트에 내일 리마 행, 비행기 값을 여행자수표로 지불하고 방에 들어와 씻고 식사하러 방을 나오다.
호텔에서 소개해준 레스토랑에서 비프, 치킨, 생선을 꼬치로 해 맥주와 곁들여 먹고(12달러) 9시 넘어 숙소에 돌아와 선체조로 몸 풀어주고 잠에 깊이 떨어지다.

H,E,L

1. 나에게 있어 두 가지 고질적인 불편, 비슷한 정도의 고통.
그러나 하나에 하나가 더해지는 유형은 아닌 듯, 그나마 다행.
성취와 성공을 이룬 사람에 있어 많은 공통점은 어떠한 형태로든 고질적인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이런 것이 또 하나의 위안을 주고, 모든 것이 결국 이롭게 되기 위함이다.
2. 여행 도중 모르는 여자에게 호감과 미움을 동시에 느꼈다.
하나는 나에 대한 관심에, 하나는 간섭에 의해 유발되고 그러나 이것들의 경계가 몹시 불명확할 때가 많다. (푸노에 오는 버스에서 만난 스위스 아가씨)

7월5일 리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04시 0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