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5. 5월 31일 수> 어긋날 일정, 혼돈의 카이로. 그러나 득과 실

카이로 도착시간 5시 40분.
오늘 이집트를 떠나 그리스를 가야한다.
가능한 빨리 지하철을 타고 그전에 묵었던 숙소에 도착하다.
호텔 직원에게 비행기 표 예약을 부탁하니 이 사람들도 여행사가 문 여는 9시 30분~10시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하고(나는 인터넷을 통해 여기 사람들이 어떤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나 생각) 그리고 예약과 비행기티켓 구입은 별개. 몇 가지 착각으로, 전번 다루살렘에서처럼 내가 직접 여행사에서 미리 티켓을 구해놨으면 그만인데 괜히 호텔에다 부탁한 것이고 생각을 조금만 깊이 했으면 좋았을걸.
7시 30분 숙소를 다시나와 무거운 가방을 끌고 바로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 표를 해결할까 하다 혹시 공항에 여행사가 없거나 티켓 없이는 아예 전번처럼 공항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기다려 여기 여행사에서 티켓을 구입하기로 작정하다.
9시 30분까지 나머지 시간을 무엇 하나 생각하다가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을 잠시 관람하기로 하고 군인들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정문에 도착, 아직 박물관은 개장하지 않고 9시에 입장권을 판다기에 박물관 정문 옆 길가에 쭈그려 앉아 군인들이 보던 말든 기차에서 breakfast로 준 빵(시간이 없어 못 먹고 가지고 내림), 잼 발라가며 맛있게 먹다.
박물관은 아침 일찍 개장 전인데도 많이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고 9시 정각 개장에 맞추어 박물관에 입장하는데 소지품검사에 카메라는 절대 반입금지. 맡기기도 귀찮고 혹시나, 설마 알아내야 싶어 큰 가방만 맡기고 작은 가방 깊이 숨겨 가져가다 들켜 괜히 민망해지다(가능하면 정도에서 어긋나는 일은 삼가. 이익과 손해가 눈에 바로 보인다 해도).
박물관에 들어가 바로 정면에 아멘호테프3세 부부의 거대한 석상이 보인다.
모든 것이 굉장하다.
예수 훨씬 이전, 솔로몬 다윗 이전, 전설과 신화로 형성된 그 오래전에 그 당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미개와 야만이 전부였던 그 오래 오래전에 이러한 엄청난 문화와 예술과 건축과 사상과 지혜와 영감과 과학과 문명을 형성할 수 있었다니, 위대함과 경이로움이 느껴지다.
아멘호테프 부부의 석상, 균형 잡힌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
지혜롭고 덕성스러운 표정. 세상의 모든 지혜와 부와 권세를 지닌 자가 마지막 인간의 한계인 죽음까지 가장 가깝게 극복하고자했던 경이로운 시대의 왕과 사람들.
그러나 미라 실에 들러(별도로 상당히 많은 입장료 지불) 람세스2 미라를 보다.
살아생전 그처럼 고귀하고 세상의 존엄과 영광 상징이었던 그들이 죽어서 제대로 썩지도 못하고, 말라비틀어진 처참하고 형편없는 몰골로 자신뿐만 아니라 아버지, 아들 3대가 세상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으니 이거 얼마나 인생사 아이러니한 일인가.
살아선 최고의 존귀함, 죽어선 처참한 모멸(람세스 입장에서).
람세스2.
67년간의 통치, 말년에 치과 질환과 관절염들 여러 질환으로 고통을 받았다하니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왕의 비참한 말년의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씁쓸하다.
박물관 관람이 끝나고 간단히 보고 나온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여행사에 도착하니 11시가 되어가고, 그리스 아테네 아침 비행기는 11시 45분.
비행기 표는 있지만 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를 타기는 도저히 시간이 촉박해 가능하지 않을 것 같고 다음 비행기는 가장 빠른 것이 다음날 새벽 3시 30분에 떠나는 것이 있어 그걸로 하기로 결정하다.
이집트는 이미 내 마음에서, 내 일정에서 떠나 있는 상태, 계획과는 달리 하루 더 있어야 한다니 기분이 영 말이 아니다.
어쨌든 다음 비행기 표 라도 사놔야겠다고 생각하고 몇 군데 여행사를 돌아보니 가는데 마다 가격이 천차만별.
이러는 과정에서 이집트에 와 처음으로 유일하게 인간다운 인간, 사심 없이 배려하고 정성이 깃든, 진실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관광객에 이득을 보기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나라. 3500년 전 조상이 준 최고의 유산으로 많이 달아져 버린 나라.
호색함이 자랑인 나라.
자기들끼리는 어떻게 사는 줄은 모르나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 온 손님을 오로지 봉으로만 생각한다.
율법에 사기치지마란 조항이 없어서 그런지 대충 사기 쳐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 이들은 그래도 하루에 4번씩 절을 하고 기도를 한다.
여행사를 세군데 갔는데 거짓말에 값도 조금, 어떤 데는 터무니없이 많이, 일단 그 친구 가게가 가장 저렴하니 믿음이 간다.
신용카드로 계산한다고 하니 자기 여행사는 안 되고 정 그러면 다른 여행사를 소개해주는데 결국 5분 거리 되는 곳을 자기가 직접 데리고 가더니 같은 가격으로 그쪽에다 부탁하고 신용카드로 결제한 후 감사의 의미로 당연히 받아야할 사례비를 절대 사양한, 우리는 평상시 종종 보지만 이집트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과 배려. 진솔한 행동에 감동을 받다.
이집트에서 차라리 피라미드가 없었더라면 이 나라 사람들이 좀 더 못살았을지 몰라도, 이처럼 순수함을 잃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니 위대한 조상이 오히려 이 국민들에게 오히려 해가 되지 않았나 싶다(우리도 관광지 주변 인심이나 세속이 다 그러지 아니한가).
어쨌든 표는 구했으나 갑자기 일정에도 없이 여기 있으려니 붕 떠버린 기분이다.
짐은 박물관에 맡겨 논 채로(6시 폐장), 새로이 간단한 일정을 짜 우선 택시를 타고 시간이 없어 가지 못했던 한 하릴리에 가다.
분주함, 먼지, 소음, 마치 인도의 바라나시를 연상시킨다.
과일로 자두, 복숭아, 사과 섞어 4파운드(800원) 주니 한 보따리다.
과일을 먹어가며 아무 생각 없이 소란스럽고 분주한 시장터를 거닐다.
식당이 탁 직관적으로 눈에 띄어 거기서 양고기 바비큐로 배를 채우고 나와, 칙 즙처럼 생긴 것을 시장사람들이 많이 사먹는 것을 보고 배탈이 나던 말든 한 컵 먹어보니 나름대로 시원한 것이 먹을 만하다.
이리 저리 거닐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피곤해 혼란 속에 택시를 잡아타고 박물관에서 짐을 찾고 시계를 보니 5시.
어디로 갈까, 공항으로 바로 가자니 아직도 10시간 남아 있고 새벽부터 지금까지 정신없이 설쳐댔더니 몸이 예사롭지 않다.
다시 그전 숙소로 돌아가 비행기 시간 말해주고 새벽1시 모닝콜 부탁, 택시 대절도 말한 후에 내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바로 눕지 않고 일단 목욕부터 하는데 코피가 팡 터지더니 잘 멎지 않는다.
또 옛날 병 도지나 걱정, 잠 한숨 자고 일어나 새 옷 갈아있고 호텔을 나와 바로 아래 가게에서 케밥을 햄버거처럼 파는 게 입맛에 돌아 2개 사서 그것을 먹으면서 어디 CD 구울 데 없나 주위를 배회하다.
어쨌든 밤에 주변을 산책하는 거라 꽤 이색적이며 흥미롭다.
되돌아오는 길에, 갈 때 눈에 스쳤던 선물 가게에 들러보니 괜찮은 물건들이 눈에 띄고 값도 싸다.
그래서 이것저것 값을 흥정해가며 선물을 사고(값을 깎으니까 이 영악한 아줌마가 나중에는 값을 훨씬 올려 말한다.
호텔에서 1장에 5파운드 파피루스 종이가 여기선 한 다스에 그 가격, 어디에 기준을 둬야할지).
어찌됐든 하나의 숙원사업을 해결하고 들어오다가 한국사람(갈 때는 활기 발랄한 예의바른 학생들, 올 때는 아줌마인지 처년지 반갑게) 만나 잠시 이야기하고 방에 들어와 또 자고, 자다보니 1시 5분전 모닝콜.
부랴부랴 짐정리하고 택시타고(운전사는 피라미드 호색한 대머리) 공항으로 가다.
비행기에 올라 이집트를 떠나다.
I had a long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