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간 30분 만에 페티아에 도착

버스 안에서 자는 듯 마는 듯 영어테이프 듣다가 어슴푸레 새벽이 밝아오고 아침 운동 겸 반가부좌로 명상 호흡하다.
차장이 무어라고 해서(버스에서 신발을 벗고 발을 좌석 위에 올려놓는 것은 금지) 요가 한다고 하니까 그냥가다.
피곤하고 일정보다 훨씬 길어지는 장거리 여행이었지만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다.
터키의 산과 바위, 마을 등 주변 경치들에 빠져있는데 버스가 멈춰서고 도로가 마을 사람에게 점거되어 운전자에게 내리라 하더니 마을 주민이 떼거지로 몰려와 상황이 험악하게 흘러가는데 이들이 설마 관광객에게까지 해꼬지 하랴 싶어 버스에서 내려 근처가게로가 물과 스낵을 사며 마을사람들에게 슬쩍 눈을 맞추며 그들 주변을 느리게 배회하니 나에 대한 어떠한 악의는 보여 지지 않고 어떤 남자는 나에게 소주 잔 보다 약간 큰 컵에 차를 담아 권하기도 해 마음으로 안도하다.
결국 경찰들이 몰려오고 무슨 서류를 작성하고 총 든 군인들이 버스주위를 지켜 서는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그냥 지키는 것인지 또 호기심이 발동해서 군인들 주변으로 살며시 모른 척 돌아다니는데 별다른 제지가 없어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버스가 보이는 범위 안에서 꽤 멀리 주변을 산책하다.(버스에는 눈을 떼지 않고)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가는 분위기여서 버스에 올라타니 버스는 곧 출발하고 우여곡절 끝에 한시가 다되어 버스가 페티야에 도착하다. 페티야로 직접 오는 버스도 있었을 텐데 오는 도중 거의 10번 넘게 마치 시골 완행버스 타듯 보이는 정류장(마을)마다 서고, 내리고, 타고를 반복하고, 버스요금을 확인해보니 내가 여행사에 지불한 것이 고급형 버스라면 이 버스는 그것보다 가격이 훨씬 싼 버스, 받기는 제대로 받고 준 것은 싸구려, 순간 사장에 대해 화가 치밀었지만 긍정적으로 전환하다.
여행사의 기묘한 장난과 무성의함에 대해 완전히 마음을 비우기로 작정한터라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꺼이 수용, 만남과 인연을 중시하고 결국 모든 게 이롭게 되기 위함이다.
버스에서 내려 정보탐색과 허기를 때우기 위해 터미널 옆 식당에 가서 내가 가고자 하는 비치와 호텔 위치, 가는 방법에 대해 물어 식사 후 셔틀 버스를 타고 약간 헤매긴 했으나 그래도 걱정 한 것 보다 훨씬 더 쉽게 호텔에 찾아가 체크인 하고 짐을 풀다.
호텔 안 내방 가까이 있는 수영장에서 오랜만에 수영하고 뜨거운 물에 목욕한 후 2~3시간 정도 푹 자다. 4시정도 되어 호텔을 나와 비치 주변을 산책하고 호텔로 다시 돌아서 저녁식사를 하다.
식사 후 주변 상가, 기념품가게, 여행상품코너를 기웃거리며 내일 일정을 계획하고 맥주한잔(술맛 꽝)하고 중국집에 들러 2층 홀에서 초우면 하나 시켜먹고 내방에 11시 정도 들어오다.
오랜만에 집에 전화하니 장인어른이 어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몹시 마음에 충격, 지운에게 뭐라고 위로할 수 없이 너무도 큰 미안함 가지다.(평생 그 빚은 기억하겠다)
해리슨 포드의 도망자를 보는 듯 마는 듯, 불을 켠 채 심난한 마음으로 잠이 들다.

H,E,L
1. 길고 황당한 장거리 버스에서 끝까지 긍정적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노력.
2. 고생 끝에 도착한 페티야의 첫인상이 괜찮긴 하나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고, 가보고 싶었으나 가지 못한 미코노스 생각에 미련이 남다.
3. 여행에 탄력이 떨어지고 뭔지 맥이 빠지는 것 같은, 무언가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했더니 갑작스런 장인어른의 죽음, 지금은 어떻게 정리가 되지 않고 다음에 곰곰이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