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일째 7월 24일> 그랜드 캐넌2; 욕심, 약간의 무모함과 자만.

5시 20분에 일어나 일출을 보고자 부랴부랴 챙겨 대충지도 보고 감을 잡아가며 정식 길도 아닌 산길을 헤쳐 가며 그랜드 캐넌 view point 에 도착하다.
이번에도 운 좋게 일출이 지금 막 시작되고 있는 중이고 그래 멋진 사진을 몇 장 남기고,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있었던 자리가 캐넌 안에 최고의 일출 포인트인 야바파이 포인트.
내친김에 림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어서 일주하리라 작정하고 일단 캐넌 산책로를 따라 동쪽 이스트 림 쪽으로 걷기 시작하다.
그랜드 캐넌에는 협곡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20km가 넘는 산책로를 만들어져 아마 세계제일의 아름다운 산책 코스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전망과 자연이 어우러져 있고 나 또한 걷는 것 자체를 몹시 즐겨하여 이왕 온 김에 그랜드 캐넌 좋은 기를 듬뿍 받아 가야겠다생각하며 산책을 계속하다.
산책로가 끝나는 동쪽 끝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내가 처음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방향을 바꿔 서쪽으로 걷기 시작하다.
중간 정도쯤 오니 배가 고프고 피곤도 하여 호텔 롯지 레스토랑에서 생각보다 훨씬 맛있게(커피, 물, 듬뿍 먹다) 비프스테이크 먹고 다시나와 서쪽으로 계속 산책로를 따라가는데 안내 책자에서 본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 이란 하이킹 코스 이정표가 보이고(무척 관심이 있었지만 시간상, 협곡아래쪽으로 6~10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 그렇지 않아도 그랜드 캐넌 협곡에 내려가 보고 싶었는데 그 길이 눈에 보이고(나를 유혹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 길을 따라 하이킹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버스시간이 마음에 걸렸으나 한번 하는 데까지 시도해보자 생각하고 일단 지금 시간이 1O시쯤 되어 체크아웃을 먼저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바로 숙소로 돌아와 샤워하고 방 정리, 짐정리, 선 체조 10분 해주니 몸 정신이 맑아지고 11시 4O분 체크아웃, 짐은 보관소에 맡기고 버스 타고 다시 협곡 쪽 하이킹 시작하는 진입로로 와(12시 10분) 4시간 만에 주파하기로 계획(셔틀버스 출발시간이 5시 30분. 4시 3O분까지 짐 찾고 셔틀버스 있는 곳까지 가고), 골짜기아래 브라이트 포인트까지는 계속 되는 내리막이기 때문에 1시간 30분 만에 주파하고 오르막은 2시간 30분 정도 시간을 잡아놓고 거의 뛰다시피 협곡 아래로 내려가다.
1시간 넘게 신나게 내려가는데 그랜드 캐넌을 순찰하는 대원이 나를 제지하더니 물이 없으면 내려 갈수 없으니 빈 물통을 주면서 위쪽 10분 정도 위에서 물을 받아 다시 내려오라는 것이고 다시 올라가는 것도 성가신 일이지만 시간도 없는 상태에서 더욱 그러기는 싫어 내 사정을 말하고 버스타기 위해 4시까지는 하이킹을 끝내야해 시간이 없어 그러니 웬만하면 내려가게 해 달라 사정하니 오히려 이게 결정적인 말이 되어 도저히 그 시간 내로 내려갔다 올라 올수도 없고 ‘너 그러다 죽는다.’ 하면서 적극만류하다.
올라가는데 쓰라고 여자 대원 걱정스런 눈으로 자기 물을 빈 통에 따라주고 그렇게 그들은 떠나가고 그냥 올라가기도 그렇고 막무가내로 내려가기도 그렇고 그렇지 않아도 온몸에 열이 나 있는 상탠데 점점 더 열이 받아 순간적으로 그 여자가 준 물통을 골짜기에 힘껏 내던지고 다시 되돌아 올라오는데 먼저 올라가고 있던 사람이 물통을 왜 골짜기에 버리나 해서 못 들은 듯 아무 말 없이 무시해 지나쳐 거의 평지를 걷는 속도로 가파른 오르막길을 쉬지 않고 올라가는데 온몸과 머리에 열기가 가득 들어차는 것 같아 중간에 식수대가 있어 머리 한번 적시고 계속 올라오면서 생각하니 이 더운 사막 기후에 그랜드 캐넌의 2000m 가 넘는 골짜기를 내려가는 것은 그렇다 치고 다시 올라오는 것은 상당한 체력소모가 따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여러 가지 정황을 보아 내가 내 자신의 체력만 믿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길게는 10시간이 넘는 코스를 4시간 만에 하려는 것은 과욕이고 무모했구나 하는 자성이 들고 그러다보니 아까 그랜드 캐넌 그 장엄한 골짜기에 화풀이로 물통을 버린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려 다시 주우러 갈 수도 없고 어떻게든 보상할 만한 그 무엇을 찾다가( 돈을 좀 기부할까 아니면 자수해 범칙금을 내든지) 결국 올라오는 길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줍자 생각하고 보물찾기 하듯 길가뿐만 아니라 경사진 골짜기에 쓰레기를 찾아보았지만 쓰레기 찾기가 돈 줍기보다 더 힘들고 한해 수백만 명이 찾는다는 곳에서 쓰레기 하나 보기가 이렇게 어렵나싶고 공원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미국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곳을 무척 경외시하면서도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다.
어쨌든 열심히 노력한 결과 플라스틱 통, 빈 캔, 담배꽁초, 휴지조각 등 거의 골짜기경사면에 걸쳐져 있는 것들을 아찔하게 모험하는 기분으로 겨우 수거해 쓰레기통에 넣다.
어느 정도 찝찝한 기분에서 벗어나 처음 출발한 입구로 돌아와 시계를 보니 2시, 이 정도 속도였으면 어쩌면 충분히 가능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아직도 조금은 남고, 그러나 돌아온 것이 현명한 선택이란 것은 확실하다.
야바파이, 짐 맡긴 로지로 돌아와 레스토랑에 들어가 음식 듬뿍 시켜서 정신없이 배부르게 먹다 보니 3시가 넘어가고 내가 가지 않은 동쪽 POINT(야키 포인트)한 곳을 가기 위해 공원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도착, 시간이 별로 없어 주위를 한번 돌아보고 사진 한 컷 찍고 온 버스 그대로 타고 숙소호텔로 돌아오다. 짐 찾고 셔틀버스 있는 곳으로 이동, 약속시간 10분 전 쯤 도착해 화장실에서 좀 씻고, 주차장에 앉아 기다리다 5시 40분쯤 버스는 출발하고 8시 정도 플래그 스태프에 도착, 그레이하운드를 타기위해 터미널로 걸어서 이동한 후 대합실에서 일기를 쓰면서 새벽12시 5분까지 기다려 L.A행 버스에 오르다.
-7월 24일 밤 10시 40분 스태프, 버스 대합실-

H,E,L
1. 깨어있는 동안 무엇이든지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한다는 진정한 의미는 여유를 갖고 하는 것.
서두름은 악마에게서 나온다.
여유란 차선을 선택에 최선의 여지를 확보하고, 부족함을 선택해 신 앞에 겸허하고, 손해를 선택해 손해가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을 즐겁게 바라봄이다.
최선이란 욕심을 지나치게 부림도 아니고 충분한 준비와 여지를 남겨놓는 것도 포함.
- 신이 작용할 공간을 남겨 놔라. -
2. 여행을 좀 더 완전하게, 의미 있게 하고자하는 욕심이 은연중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3. 그랜드 캐넌 경비 대원에게 감사한다.
작은 배낭, 물 1L, 간식, 초콜릿, 사과, 등산복.
한해 많은 수가 조난을 당하고 사고로 죽는다.
사막선 기후, 열기와 건조함 때문에 쉽게 탈수증상이 올수 있어 물은 필수.
조난의 위험성도 있어 최소한의 비상식량,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므로 초콜릿, 사과 등 영양 보충 식 필요.
단독 산행은 불리. 최소 2인 이상 동반해 산행 할 것.
탈수에 의해 순간적 시력 상실에 따른 실족사 경고.
최대한 휴식을 취하며 천천히, 서두르지 말 것.
그랜드 캐넌을 동네 약수터 가는 것쯤으로 가볍게 생각한 오류, 자만심, 과욕.
원칙을 지켜 끝까지 막무가내로 내려가려하는 정신 나간 쇠고집을 잘 막아준 그들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