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 응고롱 고로

5시 30분에 기상.
응고롱고로는 해발2400M 에 위치, 밤새 자는데 꽤 춥다.
빌린 침낭 속에 내가 가져온 침낭(인도 공항에서 버리다 실패)을 넣고 그 안에 몸을 담요로 감으니 상당히 쾌적하다. 어제 세렝게티 새벽은 동물들 발자국 소리로 분주하더니 오늘은 텐트를 때리는 빗방울 행진곡이 제법 듣기가 좋다.
만사를 제쳐놓고 약간 경사진 바닥의 조그마한 매트리스 안에서 요즘 소홀이한(몸도 덜 가볍고 잡념도 더 생기는 것 같음) 선체조로 심신의 일치, 호흡 등 삼박자에 신경 쓰며 정성껏 수련하다.
7시부터 사파리가 시작되는 걸로 알고 텐트 밖으로 나와 보니 비는 멎어있고, 원체 높은 crater(분화구)봉오리 근처에 야영지가 위치해 있어, 구름과 안개가 거듭 주변을 스쳐가며 개였다 흐렸다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주변을 산보하면서 가볍게 손발을 풀어줬다.
공주님들은 어제 피곤했는지 계속 취침 중, 9시 30분 정도 늦은 아침 식사 하고, 식사 후 바로 사파리 시작하다.
날씨가 흐려 사파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됐으나 분화구 아래로 내려가니 비교적 쾌청하다.
직경이 19km, 위에서 볼 때는 그리 넓지 않은 것 같았으나 그것은 착시 현상.
분화구 안은 웬만한 도시가 들어올 정도로 넓게 확 틔어있었고, 세렝게티에서 보지 못한 다양한 동물들을 많이 볼 수가 있었다.
사자가 여러 마리보이고, 차 있는데 까지 다가와 모델료 없이 근접 촬영케 해주고 버팔로는 위풍당당, 멀리서 치타와 코뿔소가 보인다.
분화구 호수 주변에 수많은 플라밍고 떼와 임팔라 무리들. 야생상태의 거대한 상아를 지닌 코끼리, 하마들.
그리고 전혀 사람과 차를 피하지 않는 그래서 도로에 점거하다시피 한 누와 얼룩말들(차가 도로를 지날 때는 이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못 이긴 척 길을 비껴준다) 구름과 햇빛, 그리고 분화구의 계곡과 절벽, 절묘한 산세와 드넓은 초원, 호수, 그림자에 의한 명암, 점점이 그러나 가보면 거대한 누 떼들, 응고롱고롱이 펼쳐낸 장관들.
공주들과는 많이 친해지고 포카스도 내게 상당히 우호적이다.
사자 무리가 사파리 지프차 있는 데까지 몰려오니 그것 또한 상당한 볼거리다.
나는 일행들에게, 사자를 잡아 보이겠다, 사자하고 레슬링 한 번 해보고 싶다 하며 장난치며 주변 사람들 의식치 않고 오버하며 계속 휘파람(사자에게)불자 포카스가 웃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말라고 사인을 보내다.
포카스도 한국에서 온 무대포의 사나이에게 매우 조심스러우며 정성껏 하고자 함이 느껴지다.
점심은 어디에 그런 예쁘고 아기자기한 호수가 숨어 있을 까 싶은 곳에서, 하마가 떼로 헤엄치고 있는 곳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바로 오후 사파리로 들어가다.
오후 사파리는 2시간 정도 코뿔소와 코끼리 보고, 동물도 동물이지만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끽하며 응고롱 고롱을 벗어나 3시쯤 만야라 호수 쪽으로 차를 달려 롯 지에 도착하니 거의 6시 정도. 롯 지 안 잔디밭에 텐트를 셋업하다.
카메라 배터리를 롯 지 식당에서 충전시키고 저녁식사를 하다.
포커스와 공주들 아루샤에서 파견된 직원한 명과 포카스의 나이와 이름에 대해 농담도 하고 공주들 취미, 음식, 피아노, 그네들 장래 꿈 등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서로 많이 가까워지고 친밀해진 느낌이 들고, 애들이 처음에 자유분방하지만 좀 버릇이 없다는 느낌에서 지금은 뭔가 조심하고 예의를 지키려는 모습이 보이다. (오전 사파리에서 내가 사자에게 휘파람 소리 내자 프란체스카2 ‘쉿’하며 제지해 “이 녀석 어른에게” 엄한 표정으로 주의)
포카스와 친구, 요리사에게 음료수를 사주고 나도 맥주 한 병 사서 반쯤 마시고 내일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텐트에 들어와 자다가 중간에 깨다.
침낭이 습하고 간질거려 이가 있는지 확인하다. 잠이 안와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다.

1. 사파리 투어 하는 여행자들 표정이 너무 밝고, 행복해 보여 부러웠다.
2. 이동 중 영어공부. 계속 영어로 생각하기, 어떨 때는 조금되다 어떨 때는 꽉 막힌다.
오직 최선을 다할 뿐
3. 두 프란체스카에 대해 생각하다
끊임없이 재잘거림. 웃고 노래 부르고, 두 달째 여행 중 이라는데 무슨 할 이야기가 남아 있어 불가사의.
어쨌든 참 밝고 순수하다.
위험의 땅 아프리카를 소녀의 몸으로 저렇게 티 없이 밝고 즐기면서 여행할 수 있다니!!!
편견 없이 원주민들을 대한다.
어떤 상황에도 불평 없이 순순히 받아들이는 미덕이 있다.
쉬는 시간엔 가계부와 일기를 쓰는 모습에서 진지함이 보인다.

오직 모를 뿐. 나이로비 공항 카페에서 5월 24일 8시 30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