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도착하다. 열심히 했는가, 즐겁게 했는가, 이롭게 했는가.

아침에 일어나 빨래개고 짐정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하다.
큰 가방 밑바닥에 버리기도, 놔두기도 아까운 것 깔고, 자주 안 쓰지만 필요한 것은 그 위에, 그리고 꼭 필요하고 자주 쓰는 것들은 바로 꺼낼 수 있게 위쪽이나 옆쪽에 배치해 놓으니 짐도 작아 보이고 더 효율적이다.
삐꺽대는 침대위에서 간신히 선체조하고 11시가 다 되어 프론트로 가서 체크아웃하다.
그 여인숙 주인인 히스테리 노파가 어땠냐고 물어서 웃으며 good 이라 말해주니 자기도 활짝 웃는다. 상대는 자기의 거울.
숙소를 나와 10분쯤 걸어 베네치아 역으로 가 짐을 기차시간(12시 30분)까지 보관시키려다 시간이 어중간해 그냥 기차역 카페테리아에 주저 않아 커피한잔 시켜먹고 일기 쓰면서 지난 여정에 대해 점검하다.
기차시간이 다 되어 급하게 편의점에서 주스, 과자, 물, 빵 사가지고 기차에 올라 기차가 떠나려는 막간을 이용해 플랫폼에 서서 빵을, 기차 안에서는 물과 비스킷을 먹으며 점심을 때우다.
저녁 7시 넘어 로마에 도착하여 제일먼저 다음 행선지인 나폴리 왕복표와 취리히 기차표를 예매하기위해 줄을 서, 상당히 많이 기다려서 겨우 예약하고 거의 9시가 다되어 기차역을 나오다.
여행 책자에 나와 있는 호스텔 위주로 숙소를 물색하며 주위를 도는데 평균 제일 싼 것이 70~80유로. 다시 지도 보고 확실하게 나침반을 어둠에 비쳐가며 찾다가 한 군데 발견했으나 거긴 일단 보류하고 여행 책자에서 좀 더 낫게 소개한 곳을 보물찾기하듯 찾아 헤매던 중 한국인 식당을 만나다.
10시 정도, 문 닫을 시간인 것 같은데 김치찌개에 소주 한 병 시켜놓고 기다리니 반찬도 제법 정갈하니 음식 맛도 훌륭하다. 음미하듯 소주와 김치찌개를 온몸으로 짜릿하게 즐기며 매우 흡족한 가운데 식사하다.
지운에게 전화하니 장모님은 그전 아파트를 내놓고 우리 아파트 쪽에 방을 구하고 계셨는데 다행히 302 라인에 집이 나와 구했다한다.
오랜만에 소주에 김치찌개 먹으니 긴장도 풀어지고 고향이 있는 듯 마음도 느긋해져 집으로 전화해 유럽일정 말해주고 통화가 좀 길어지다.
밖으로 나와 원하는 호텔을 겨우 찾았으나 안내 책자에 나온 것과는 모든 조건과 상황이 완전히 다르고, 제일 처음 봤던 유스 호스텔에 다행히 자리가 있어 거의 11시 정도 되어 35유로에 하룻밤을 묵다.
숙소 구하려 돌아다닌 2시간.
무거운 짐 메고 끌고, 지도와 나침반에 의지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그냥 대충 찾기도 하고, 5분이면 쉽게 구할 수도 있는데(돈을 주면)큰길, 작은 길, 골목길을 구석구석 쑤시고 다닌다.
이것 생고생에 시간낭비 아닐까라는 약간의 의문과 회의가 스쳐 지나가지만 이렇게 온몸으로 걷고 부딪치는 게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막연하게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다.
틀에 박히고 정형화되지 않는 여행, 살아있는 여행을 위해선 무조건 많이 걸어라.
일상적인 그네들의 삶을 비슷하게라도 느끼기 위해 택시는 가급적(응급상황 제외) 사양,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라. 걷다가 직관적으로 눈에 스치면(의미 있게 다가오면) 거기 머무르고 체험하고 식사해라.
누가 뭐라 든 자기식대로 여행하라.
자기가 세운 원칙에 충실한 여행이 되자.
그 원칙중 하나, 숙소에 10만원 넘게 지불치 마라. 숙소란 씻고 짐 맡기고 잠시 자는 공간 일뿐, 수행자나 여행자나 호사하면 그 본질은 잃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