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일째. 6월 18일 토요일> 월드컵 한국 프랑스전을 뜨거운 마음으로 관람하다.

새벽에 한기를 느껴 깨다.
기차 안이 에어컨을 틀어놓은 상태에서 일교차가 있어선지 새벽에 대개 춥고 4인용 쿠쳇에 덮을 것으로 시트 한 장 주는 정도기 때문에 그걸로는 부족하고 원래 베개에다 쿠션이 하나 나와 이것 용도가 무얼까 생각했는데, 그걸 가슴에 안고 다시 좀 더 잤더니 추위가 훨씬 덜 하다.
베를린 도착 예정시간은 8시 50분.
큰 짐은 아예 풀지도 않고 위쪽 짐칸에 처박아 놓았는데, 전날 슈퍼에서 이것저것 많이 사서 가방이 지금도 방방하다.
반성하고 짐 정리 다시하다.
씻고 바로 옆 칸 자전거 보관하는 데서 어제 산 식빵에 햄과 오렌지 주스를 겻 들어 선 체로 바깥풍경 보면서 아침 식사를 하다.
8시 정도 승무원이 기차티켓, 여권, 패스를 가져다준다.
열차에는 거의 반수가 한국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이 왔다 갔다 하고 종종이 모여 이야기와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앞으로 있을 게임으로 약간씩 들뜨고 기대에 찬 모습들이다.
9시 51분이 되어 정확하게 기차는 도착하다.
베를린 역은 지하 2층, 지상 3층 정도의 웅장하고 거대하면서 잘 정돈된 듯 보이는 초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베를린에서 몇 시간 머물 것을 생각하고 수화물 보관소에다 짐을 맡기고 스위스에선 비싸서 못 산 꽤 맘에 드는 시계를 아주 싼 가격에 (15유로) 기분 좋게 구입하고 워낙 괜찮은 것 같아 하나 더 살까 하다가 그것은 담백치 못한 처사 인 것 같아 그만 두고 다음 포토샵으로 가 CD 굽는데 용량이 2기가라 30프랑 요구 했던 스위스와는 달리 6.8 유로(처음에 6유로였으나 용량이 커 80cent추가, 전체 축소 사진도 서비스로 준다)로 해결하고 나오는데 다른 나라들에 비해 모든 것이 저렴하고 성실하게 일 처리를 한다.
베를린 장벽을 보러 가기 위해 지하철로 가 티켓을 끊고, 현지인도 헷갈릴 정도의 복잡한 지하철 망을 이용해 베를린 장벽에 도착, 흔적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곳에서 옛날 사진과 현재 사진을 비교하며 한참을 돌아다니다.
지하철 타고 약간 헤매다가12시 12분, 역사로 돌아오다.
원래 생각했던 시간대는 포기하고 2시간 후에 레이프지그로 떠나기로 작정하고 아까 눈에 띄었던 식당에 들어가 통닭, 감자 칩, 소시지에 맥주하나 곁들이니 푸짐한 식사거리가 되고 자리에 앉아 천천히 뼈다귀까지 발라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
베를린 역사 밖으로 나가 주변을 잠시 산책하고 시간이 되어 전광판 보고 해당 gate 확인한 후 15분 정도 남겨두고 레이프지그 2번 출구로 가 기차에 올라타고 출발.
기차 안에서 졸다보니 어느새 레이프지그에 도착, 역사 내 무인 수화물보관소에다 운 좋게 짐 맡기고 월드컵 스타디움이 어딘지 물어 트램 타고 스타디움에 도착하니 거의 5시.
축구 시작 까지는 4시간 정도 남아 있고 티켓을 구하러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No ticket.
별로 기대도 않아 실망할 것도 없고 이제 암표 상황 파악하니 원래가격보다 2배씩 불러대고, 일단 사는 것을 보류하고 카페테리아에 들어와 브라질, 호주 전을 TV로 보면서 일기를 쓰다.
한국인 응원단과 붉은악마들.
2002년 보다 훨씬 세련된 복장과 패션으로 삼삼오오 모여들고 경기장 주변 곳곳에서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 경기 전인데도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 느낌이다.
나도 모르게 2002년도의 함성과 그 뜨거웠던 열정, 감격, 환희가 생각나 온몸이 찌릿, 전율이 인다.
어제 시계, 볼펜, 가루비누, 로션, 샤워비누 등 필요한데 막상 구하려니 적당한 게 보이지 않아 미뤄놨던 것들을 다 구해 놓으니 마음이 풍성하다.
카페테리아 안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TV앞에 앉고 서서 브라질 호주 전을 보며 박수치고, 환호하고 또 야유하면서 참 색다른 광경이 아닐 수 없다.(6시 13분 p.m.)
다시 표 구하기 작전, 정상적으로 표는 구할 수 없고 오직 암표인데 경기 시작 2시간 전 아직도 가격은 떨어지지 않고 1등석 100유로짜리가 200유로.
아직도 때가 아닌 것 같고 월드컵 경기장 주변을 뺑 돌면서 한국, 프랑스 응원단 분위기, 축제 같은 분위기, 열띤 광경들을 살피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거의 경기 시작에 맞춰서 다시 암표상에게 Try, 아직도 50%정도 웃돈이 붙어 있고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티켓은 무용지물, 시간은 내편이고.
경기 시작시간이 거의 되자 나도 조금씩 초조해 졌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딱 5분만 늦게 보자.
다시 모른 체 주변을 서성대는데 경기는 시작되고, 5분후 다시 Try.
1등석 100유로, 제 가격 주고 산 후 바람처럼 달려 스타디움 안에 입장하고 경기는 10분 넘게 진행된 상태, 전광판을 보니 우리가 1:0으로 지고 있다.
진행요원의 도움을 받아 내 좌석에 앉고 보니 중앙VIP석에 가까운 좋은 자리로 내 양옆에 독일사람, 내 앞쪽에 프랑스 응원단이 진을 치고 있고 내 뒤쪽은 몇몇 한국 사람들이 보이고, 좀 묘한 상황이라 생각했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경기에 집중하다.
붉은 악마들은 내 맞은 편 스탠드에 포진하여 응원을 주도 하는데 거기에 맞춰 대한민국을 연호하니 내 목소리가 워낙 크다 보니 앞에 포진한 프랑스 응원단들이 다 쳐다본다.
압도적인 숫자의 열세, 적과의 동침, 약간 주눅이 들려는 순간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배에 내공을 실어 아까보다 더 크게 대한민국을 외치니, 프랑스 사람들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화답해 준다.
옆자리의 독일 청년과 노인도 사심 없이 한국 응원단의 구호 소리에 맞춰 같이 응원해 주고 또 프랑스 응원단에서 응원하면 거기에도 맞춰주고 어떻게 보면 game을 부담 없이 즐기는 모습이고, 또 한편으론 양쪽 손님들 기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경기도중 옆 독일 친구와 축구를 보면서 한국 팀에 대해 축구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2002년 월드컵 때 광주에서도 경기가 열렸지만 경기장에 가서는 보지 못했는데 세계여행 중에 참으로 묘하게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가장 중요한 경기가 나의 흐름에 맞춰 주다니.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각본에 의해 모든 것이 하나씩 이루어지듯이 그래서 여행 중 하나의 미션 이었던 독일에서 월드컵 관전,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팀 1:0으로 지고 있다. 후반 얼마 남지 않아 박지성의 동점골이 터져 프랑스 안방이나 다름없는 유럽에서 승리 한 것 이상의 감격과 흥분을 나에게, 거기 모인 모든 한국인에게 선사해 주었다.
한국 팀은 확실히 강했고,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고 침착 했으며 몇 번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았으며 결코 끝까지 포기 하지 않았다.
세계 최강 프랑스를 맞이해 반칙 등 지저분한 방법 없이 정정 당당하게 맞서 싸웠으며 적지나 다름없는 유럽에서 2002년 월드컵 4강이 결코 운이나 텃세가 아니었다는 것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각인 시켜 줄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게 더 큰 감동을 준다.
전반적으로 약간 밀리는 감이 있었으나 후반전까지 체력을 유지하여 막판에는 오히려 프랑스를 밀어붙이는 저격을 발휘했다. 프랑스 응원단의 열렬한 응원, 호각 소리 파도타기에 전혀 기죽지 않고 붉은 악마들과 일당백의 자세로 목 터져라 응원한 보람이 있어 독일에서 기억에 오래 남는 추억을 갖게 되었다.
주변에 않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축하와 프랑스 사람까지도 축하의 악수를 건네주고, 거리에서 한국 응원단의 뒤풀이 응원에 잠시 가세하다가 허기가 져 길가 노점에 바비큐 스테이크, 소시지와 맥주를 같이 먹은 후, 기차역으로 가 기차 역사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DB안에 들어와 의자에 누워 잠을 자다.

H,E,L
1. 축구가 총 없는 전쟁이라 응원단 분위기도 서로 살벌하지 않을까 약간 걱정했으나 확실히 월드컵은 세계인의 축제였다.
프랑스 응원단은 우리나라 여학생들의 예쁜 모습과 귀엽고 발랄한 옷차림에 반해 같이 사진 찍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고, 붉은 악마들의 강렬한 이미지가 2002년 월드컵 때 워낙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돼 유명해져 버린 탓인지 하나의 명물처럼 신기해하며 사진에 닮기 여념이 없다.
오히려 프랑스 사람들. 경기가 끝난 후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리듬에 맞혀 따라하는 것과 태극기를 얻어 마치 어깨에 두르고 의기양양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우습기도 하고 재밌기도 함.
2. 베를린에서 수화물 번호표 4444 약간 순간 찜찜해하다.
굳이 숙소 구할 생각은 포기, 축구가 늦게 끝나고 다음날 첫 차로 떠나야 할 상황에서 방을 힘들게 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