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6(6월 21일 수) 파리

5시 30분 기상.
화장실 겸 목욕탕, 반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겨우 빨래 몇 가지하고 샤워 후, 선 체조 하고 한 시간 정도 다시 눈을 붙이다.
9시에 숙소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루브르 박물관 쪽으로 가다.(숙소에서 한 정거장)
줄서서 기다렸다 입장해 12시 까지 관람하다.
바티칸 보다 감동은 덜하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안내 책자에 소개된 명작들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서 보고 유명하거나 인상적인 작품들은 되돌아가 다시 한 번 더 보는 식으로, 그리고 일반 작품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일정상 전에 보다 빠르게 진행하다.
루브르 박물관을 나와 개선문으로 가다.
사진으로 볼 때는 규모도 작고 밋밋하고 단조롭게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훨씬 웅장하고 예술성이 뛰어난, 기대나 상상을 훨씬 능가하는 멋진 건축물. 파리의 방사선 상으로 펼쳐진 대로들 중간에 위치해 모든 길이 개선문을 통과 하게끔 설계 되어, 100년 넘게 내다보고 형성된 파리 교통망의 실제적 안목과 1000년 동안 빛날 것 같은 예술적 조화에 감명 깊었다.
개선문에서 나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에펠탑 쪽으로 향하다.
지하철에서 에펠탑으로 가던 도중 길가 레스토랑 실외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잘 못 읽어 생고기 비슷한 이상한 음식 나오고, 비위가 뒤틀렸지만 끝까지 다 먹고 나오다.
에펠탑에 도착해 표사는 데 30분 걸리고, 엘리베이터 타기위해 줄서서 있다.
최소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줄에서 빠져나와 다음 코스인 피카소 미술관 쪽으로 향하다.
미술관까지 바로 가는 지하철은 없고 그 근방에 내려 약 2km넘는 길을 6,7명되는 프랑스인에게 계속 길을 물어가며 미술관에 도착하다. (편견이 깨지다)
프랑스 사람은 배타적이지 않았고, 최대한 알든 모르든 성의 있게 가르쳐 준다. 프랑스 사람에겐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거나 영어로 물으면 알아도 모른 체한다도 틀린 속설이었고 길 찾기에 대한 간단한 영어는 상대방도 거의 알아들었고 대꾸도 영어를 사용해서 설명해 준다.
감사를 표현 할 때마다 내 마음이 따뜻해질 정도로 환한 웃음 보여주고 넉넉한 제스처로 대해준다.
피카소 미술관에 도착해 매표구에 국제교사 증을 보여주며 할인 여부를 물어보니 교사에 한해 입장이 무료라 하며 그냥 들어가라고 한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려하고 위아래 층을 아주 천천히 오가며 그동안 그림이나 사진으로 익숙해 져 있던 피카소 작품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세밀하게 관찰하고 나름대로 작품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가치,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려 하듯 정성들여 관람하다.
어지럽게 배열된 것처럼 보이는 선과 면이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아름다음과 충만함이란 목표를 위해 헤쳐모여 있다는 느낌이 들고, 어떤 작품은 그림이란 이차원적 평면에 우리의 감정, 욕구, 공포까지 끄집어들여 그것을 삼차원 현실보다 더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 그림 자체가 밋밋하지 않고, 피카소를 아는 어떤 사람이라도 그의 작품을 어렵지 않게 구별해 낼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는 자기만의 색깔 (무질서 한 것 같이 보이지만), 선하나, 점하나도 그저 있지 않고 빠져 버리면 뭔가 미흡할 것 같은, 철저하게 조화로움과 아름다움과 내면적인 것에 집중해 있는, 어떤 것은 매우 슬프고, 어떤 것은 뭔지 모르지만 참 아름답게 느껴지고, 어떤 것은 빨려들 것 같은 강한 기가 느껴지고, 2시간 넘는 시간동안 피카소를 체험하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몽마르트 언덕으로 가다.
사크레퀘르 사원에 올라가 멀리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고 떼르트르 광장을 지나 주위를 뺑 둘러 산책하다.
유흥가 쪽으로 내려와 일식집에서 생선회 시켜 맥주 한잔에 저녁 식사하다.(6시 30분)
다음 코스로 뽕삐두 센터를 향하다.
센터 주변에서 갖가지 거리 공연을 기웃기웃하다.
갑자기 소나기가 폭발하듯 터져 버리고 센터 안에 들어가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꼭대기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다.
파리 시내 전경을 내려 보다가 2층에 들러 간단한 기념품을 사고 뽕삐두 센터를 나와 에펠탑 전망대에 늦은 밤 10시쯤 도착하다
표는 낮에 샀고 조금 기다려 엘리베이터 타고 탑 꼭대기로 올라가다.
에펠탑도 명불허전이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나 웅장함이 상상이상이다.
대개 소문 보다 실물을 보면 별게 아닌 경우가 많은데 개선문도 그렇고 에펠탑도 100년도 훨씬 전에 건축 됐다고 하는데 그 아찔할 정도의 높이까지 크레인도, 비행기도 없이 어떻게 그 거대한 철골 구조를 이토록 치밀하게 완성 시켰을까?
파리 시내의 야경을 비가 온 후라 약간 흐릿하게 내려다 보다.
에펠탑을 나와 오늘 마지막 일정인 세느강 유람선을 타러가다.
시간이 11시가 다되고, 거의 마지막 유람선을 10분정도 기다려 나 포함해 10명도 안 돼는 숫자가 유람선에 오르다.
아까 멈췄던 비가 유람선 위로, 세느강 위로 다시 내리고 유람선 안에 있는 여자 도우미가 강을 따라 있는 파리 명소들을 영어로 소개해주고, 각 자리마다 헤드폰 있어 5개 국어로 각 명소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영어, 일어, 프랑스어, 에스파니어(?), 또 하나는 놀랍게도 한국어다.
세계 그 많은 언어 중에 우리나라 말이 5개 안에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이 미묘한 징조가 다른 나라사람은 쉽게 말하는데 우리들을 별로 믿지 않는 우리나라 위상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다.
배 간판으로 나와 그냥 비를 맞으며 물결 따라 흘러가는 파리를 지켜보다. 배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다.
숙소로 가는 도중 콩코드 광장에 불연 듯 내려 광장 주위를 산책하다.
주변은 젊은이들 몇 명만이 파리의 늦은 밤을 향유하듯 서성거리고,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아래로 내려와 지하철을 타고 숙소를 향한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어가고, 내가 내려야 할 숙소 지점에 기차가 정차하지 않고(12시 넘어서는), 거기서 가까운 역에 내려 숙소를 찾아오는데 거기가 거기 같고 저기도 여기 같고 2시간여를 그 근처에서 헤매다 겨우 숙소 발견. 씻고 잠에 곯아떨어지다.

H,E,L

어제 나를 압도했던 파리. 여기도 예외 없이 하루가 지나고 한나절이 지나자 막연함과 무지 속에 인식과 분별의 빛이 비쳐지고 모든 게 편해지고 만만해진다.
내일이 되면 여기도 좀 더 많이 익숙해지고 또 약간은 지루해지겠지.
삼일수하!